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야마모토 간스케 (문단 편집) == 생애 == [[다케다 24장]]의 일원으로, 다케다 24장을 그린 그림 등에서 신겐의 옆에 위치한 애꾸의 사내가 간스케. 동시대의 사료에서 존재가 확인되지 않고 그 활약상을 전하는 사료가 에도 시대에 성립되어 신빙성이 일부 의심되는 <갑양군감>이었기 때문에, 오랜 기간 동안 사회 일반에서는 인기있는 소재였지만 사학계에서는 전적으로 가상의 인물 취급을 받아 왔다. 하지만 '마시모 가 문서'등 1970년대부터 야마모토 간스케의 이름이 적힌 당시의 문서가 여럿 발견[* 정확히는 山本菅助라고 적혀 있다. 같은 이름을 다른 한자로 표기하는 경우가 일본 중세시대에는 흔한 일이라, 이 菅助가 勘助와 동일인물일 가능성이 높다.][* 일본측 위키에 따르면 1969년에 [[NHK 대하드라마 시리즈]] 하늘과 땅([[우에스기 겐신]]이 주인공인)을 시청하던 [[홋카이도]] 지역의 한 주민이 "어? 우리 할아버지 때 저기 나오는 사람들 이름이 적힌 종이가 집에 있었던 것 같은데?"하고 떠올려내고는 집안에서 대대로 소장해오던 그 문서를 찾아냈는데 공교롭게도 거기에 야마모토 간스케라는 이름이 떡하니 실려 있었던 것.]되어 사학계에 큰 파문이 일었고, 결국 현재는 아무도 간스케가 실존인물임을 의심하지 않는 편. 하지만 그 문서는 야마모토 간스케라는 이름을 가진 중상급 무사 신분의 가신의 존재를 증명할 뿐이고 그 야마모토 간스케가 에도 시대 군담에서처럼 다케다 가문 내에서 크게 활약했는가의 여부는 불분명하다. 사학계에서는 사나다 유키타카 등 지략에 능했던 다른 가신들의 공로가 후대에 간스케에게 부회된 것으로 보는 견해가 많으며 (문서 등 실제 증거에서 유추할 수 있는) 간스케의 실제 역할은 중상급 무사로서 다양한 다케다 가문의 내부 업무에 종사하는 것이다. 문서에서 확인된 간스케의 업무는 신겐의 명령을 전달하거나 수행하는 것인데, 간스케가 처음 실존 인물임이 밝혀진 '이치카와 가 문서'에서는 시나노의 호족 이치카와씨의 활약을 치하하며 문서 말미에 '''자세히는 이 문서를 가지고 가는 야마모토 간스케가 설명할 것이다'''라는 구절이 확인되었다, 이후 "마시모 가 소장 문서"[* '소장'이라고 불리는 이유는, 이치카와 가 문서는 후손이 대대로 물려받은 문서이지만 마시모 가 소장 문서는 관계 없는 사람이 수집한 고문서에서 발견된 것이기 때문이다.] 가신이던 오야마다 노부아리가 종기로 인해 사경을 헤매자 간스케에게 문병을 가고 에치고의 [[우에스기 켄신]]에 맞서 '유라기(揺らぎ)'라고 불리는 군사 작전을 수행하도록 지령을 내리기도 했다. 사료로 검증이 가능한 내용은 이상이고, '군감'에서의 활약상은 다음과 같다. 간스케는 다양한 나라를 거치며 병법[* 일본에서는 같은 '병법'이라는 한자라도 '효호'라고 읽으면 무술을 뜻하고, '헤이호'라고 읽으면 병법을 뜻한다. 간스케는 교류(경류) 검술도 배웠지만 후자를 중점적으로 익혔다.]과 교류(경류) 검술을 체득하고, 먼저 스루가의 이마가와 가문을 방문해 갓 영주가 된 [[이마가와 요시모토]]에게 임관하려 했다. 그러나 요시모토는 간스케의 추한 용모와 장애를 보고 경멸하며 임관을 거절했고, 간스케는 다년간 실의에 빠져 스루가에서 허송세월을 했다. 후일 간스케는 가이의 [[다케다 신겐]] 밑으로 들어가게 되고, 신겐은 200칸[* 세입이 쌀 기준인 고쿠다카가 아닌 '칸다카'인 경우인데, 이 경우 비옥도에 따라 지방마다 '고쿠'로 환산했을 경우의 수입이 달라지므로 계산이 복잡해진다.]의 영지를 하사했다. 아직 가이 1국에 불과하던 시절의 하루노부(=후일의 신겐)를 잘 가르쳐서 스와를 빼앗게 하고,(이때의 악행이 다케다 집안의 큰 업보였다고도 한다) 북시나노를 압박해오는 무라카미 요시키요를 계략으로 격퇴시켰다. 신겐은 이에 간스케를 곧 800칸이나 되는 영지를 주어 보답했는데, 후다이[* 대대로 다이묘 가문을 섬긴 원로 가신단.]가 아닌 로닌 출신으로서는 파격적인 승진이라고 할 수 있다. 간스케는 항상 5할의 승리가 최고의 승리라 했는데, 10할의 승리는 교만을 낳기 때문이라고 한다. 4차 카와나카지마 전투에서 부대를 둘로 나누어 산에 진을 친 [[우에스기 켄신]]을 협공하려고 '[[딱따구리]] 전법'을 제안하는데, 천재인 켄신에게 간파되어 실패하고 책임을 지기 위해서 돌격해오는 우에스기군을 막아 싸우다 전사했다고 한다.[* 이것 때문에 시니컬하게 평가하는 사람들은 '''대실패가 제일 유명한 업적인데 명군사로 평가된다'''며 조롱하기도 한다.] ||[[파일:external/www.gakubuti.net/kuniyoshi-01_l-l.jpg|width=100%]]||[[파일:external/www.gakubuti.net/kuniyoshi-01_c-l.jpg|width=100%]]||[[파일:external/www.gakubuti.net/kuniyoshi-01_r-l.jpg|width=100%]]|| [[파일:external/www.gakubuti.net/kuniyoshi-18-l.jpg]] 간스케의 활약은 [[다케다 신겐]]부터 [[다케다 카츠요리]]까지의 정세를 서술한 <고요군칸>(갑양군감)에 중점적으로 등장하는데, 이 저자로 알려진 [[코사카 마사노부]]의 스승이 간스케였다고 한다. 군감에 의하면 각종 병법의 달인이며 절름발이인데도 경류 검술의 고수라고 한다. 절름발이에 애꾸가 검도의 고수라고 전해진 것은 꽤나 신기한 일이다. 어떤 격투기든 애꾸는 치명적인 약점이고, 절름발이라면 더더욱 제대로 된 싸움을 하기 어려운데 경류의 달인이라고까지 평가된 것은 과장이거나 다른 인물의 평과 섞인 것으로도 볼 수 있다. 드라마 풍림화산이나 게임, 또는 영화 등에서는 승려 복장을 한 무장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은데, 역사만화 등의 매체에서는 무장이라기보다는 닌자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다. 다케다가 닌자의 수장으로 행동했다는 설정이 많이 보인다. 일본인들이 이런 류의 인물을 어떻게 생각했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